박제민(기독교윤리실천운동 활동가)
한기총의 탄생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시작 이야기를 하려면, 역설적이기도 하고 필연적이기도 한 것인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를 언급해야만 한다. 1988년 2월, NCCK 제37차 총회에서는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88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은 개신교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한국 기독교사 연구의 거장인 이만열 선생은 ‘88선언’에 대해 “분단 시대에 한국 기독교가 남긴 가장 중요한 문건의 하나로 한국 기독교사에 남을 것”이라고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개신교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보수적이었기 때문에 88선언에 대한 반발도 터져 나왔다. 특히 북한 출신 목회자들이 더욱 민감하게 반응했는데 그 중심에는 한경직(영락교회) 목사가 있었다. 1989년 1월, 보수 개신교 원로들은 한경직 목사의 거처에 모여서 NCCK를 대신하는 개신교 연합기관을 세우기로 결의했다. 그래서 1989년 4월에 창립준비위원회 총회, 12월에 창립총회를 거쳐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탄생했다.
그런데 한기총의 출범에 당시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있다. 한기총의 초대 총무였던 한명수 목사는 <뉴스앤조이>와의 인터뷰에서 “설립 당시 전두환 정권이 NCCK를 견제하기 위해 한기총을 탄생시켰다는 근거 없는 말이 돌았는데 총무로 활동하면서 그 소문이 사실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그 근거로 한경직 목사 등 원로들이 군사정권에 찬성한 점, 당시 문화공보부 종무실장이 박맹술 초대 회장을 시도 때도 없이 불러서 무언가를 지시한 점 등을 들었다. 국정원과거사진실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오충일 목사도 2005년 4월 한 포럼에서 한기총 결성에 안기부의 종교담당 직원이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한기총의 변질
꺼림칙한 부분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기총은 이후 한국 개신교를 대표하는 연합기관으로 인정받았다. 역사와 전통에서는 NCCK(1924년 설립)에 비교될 수 없었지만, 가입교단 수와 규모 면에서 NCCK를 압도하며 성장했다. 1989년 출범 당시는 36개 교단이었던 것이 2011년 기준으로 66개 교단으로 늘어났다.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순복음 등 규모가 큰 교단이 모두 소속되어 대표성을 가지게 되었다. 사회에서, 특히 정치권에서 개신교를 대상으로 인사를 하거나 의견을 구할 때 한기총을 찾는 일이 잦았다.
한기총에 대표성이 생기자 ‘힘’을 원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특히 한기총 대표회장 자리는 ‘빛 좋은 자리’였다. 대형교회 목사, 교단장 출신 목사들이 차례로 대표회장이 됐다. 엄신형 목사는 군소교단 출신 최초로 대표회장이 됐는데, 당선되면 10억 원을 헌금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우려와 빈축을 샀다.
한기총은 대표회장이 10억 원쯤 내야 유지되는 단체, 바꾸어 말하면 10억 원을 내면 대표회장 자리에 당선될 수 있는 단체였다. 언제부터인지 한기총 대표회장 선거에 ‘10당 5락’이라는 말이 돌았다. 5억 원을 쓰면 떨어지고 10억 원을 써야 당선된다는 이야기였다. 개신교 기관의 대표 선거에서 돈이 오고간다는 추악한 소문은 곧 사실로 드러났다.
돈 선거, 분열, 막말-정파 목사의 등장
한기총은 2011년 돈 선거 논란을 겪으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2003-2004년 대표회장을 맡았던 길자연 목사가 2011년 대표회장에 또다시 출마해 당선됐다. 그런데 길자연 측에서 돈을 돌렸다는 폭로가 나왔다. 한기총은 직전 대표회장인 이광선 목사 측과 차기 대표회장인 길자연 측으로 나뉘어 갈등을 겪었다. 그 와중에 이광선은 자신도 돈을 돌렸다고 인정했고, 전임 대표회장이었던 이만신 목사가 한기총 특별기도회 설교 중에서 엄신형, 이광선, 길자연 모두 돈을 돌렸다고 회개하라는 돌발 발언을 했다.
결국 법원의 중재로 돈 선거를 막기 위해 정관에 ‘교단순번제’를 도입하기로 했지만, 길자연이 대표회장으로 복귀한 후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길자연에 이어 다음 대표회장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속인 홍재철 목사가 단독 출마해 당선되었다. 다른 교단들은 반발하며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었고 결국 한기총에서 떨어져나가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을 만들었다. 이후 홍재철이 이단성 있는 교단, 단체, 인물들을 영입하면서 한기총과 한교연의 통합은 더 어려워졌다.
2019년, 몰락하는 한기총의 대표회장으로 막말과 정치파벌 행위를 일삼는 전광훈 목사가 당선됐다. 한기총의 전성기 시절이라면 전광훈 같은 사람이 대표회장이 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전광훈의 당선 자체가 한기총의 몰락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아니다 다를까, 전광훈은 이단성 있는 교회, 인물을 한기총에 받아들이고 한국 개신교의 이름을 마구 갖다 쓰면서 막말과 정치파벌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
한기총, 한국 개신교 소수집단
한기총은 지난 6월 5일 발표한 이른바 ‘시국선언문’에서 스스로를 “6만5천 교회 및 30만 목회자, 25만 장로, 50만 선교가족을 대표하는 한기총”이라고 표현했다. 과연 한기총은 한국 개신교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을까?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8년 한국의 종교 현황”을 토대로 검토해 보았다.
먼저 교단 수를 살펴보자. 현재 한기총 홈페이지에는 가입교단이 79개로 소개되어 있다. 하지만 그중에 10개 교단이 행정보류 상태이고, 최근에 행정보류를 결의한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기하성), 사실상 활동을 안 하고 있는 기독교한국침례회(기침)까지 포함하면, 현재 한기총에는 67개 교단이 남아있는 상황이다. “2018년 한국의 종교 현황”은 한국 개신교의 전체 교단 수를 374개로 보고 있다. 단순히 수치만으로 보면 한기총에는 한국 개신교 전체 교단 중 약 18%가 가입해 있다. 게다가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순복음 등 규모가 큰 대표적인 교단들은 모두 빠져 있다. 그러므로 현재의 한기총은 군소교단들의 연합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다음으로 교회 수를 살펴보자. “2018년 한국의 종교 현황”에 따르면 한국 개신교의 교회 수는 83,883개다. 자료에는 교직자 수나 신자 수는 기록되지 않은 교단이 많지만, 교회 수는 모두 기록되어 있으므로 보다 명확한 비교가 될 수 있다. 자료에서 한기총에 소속된 교단의 교회 수를 모두 합하면 17,855개인데, 한국 개신교 전체 교회 수의 약 21%에 해당한다.
같은 방법으로 교직자 수, 신자 수를 파악해보면, 한국 개신교 전체의 교직자 수는 98,305명, 신자 수는 11,320,750명인데 비해 한기총에 소속된 교단의 교직자 수는 2,850명, 신자 수는 349,471명으로 한국 개신교 전체에서 약 3% 수준에 불과하다. 앞서 말했던 자료에는 교직자 수와 신자 수가 표시되지 않은 교단이 많다. 하지만 대부분 규모가 작은 교단임을 감안할 때 극단적으로 수가 증가했을 가능성은 없다.
정리하자면, 한기총은 한국 개신교에서 교단 수 18%, 교회 수 21%, 교직자 수 3%, 신자 수 3%가 소속된 단체다. 다른 수치에 비해 교회 수 비율이 높은 것은, 한국에서 교회가 많이 난립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기총이 한국 개신교를 대표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
이렇게 통계를 살펴본 것은 단순히 한기총이 소수이므로 대표 자격이 없다고 말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그런 논리는 경계해야 하며, 우리 사회는 소수의 목소리를 더 잘 경청해야 한다. 하지만 한기총의 경우는 늘 규모를 언급하며 한국 개신교를 대표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팩트체크’를 해본 것이다.
한기총이 한국 개신교의 대표가 아닌 진짜 이유는 그들의 주장이 신앙적이지도 않고, 상식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최근 6개 이단 연구단체는 한기총이 이단옹호기관으로 변질되었다며 자진해서 해체하라고 촉구했다. 개신교 원로 31인도 전광훈에 행태에 대해 “반성경적, 반복음적 폭거이고 신앙적 타락”이라고 비판하며 정치를 하고 싶으면 목사직을 내려놓고 하라고 권고했다.
교회는 혐오와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화해를 북돋아야 한다. 정의를 말하고 약자의 편에 서야지, 궤변을 늘어놓으며 일개 정파를 선전해서는 안 된다. 한기총과 전광훈의 막말과 기행은 한두 번 주목을 받겠지만 결국 고립과 한기총 해체를 앞당길 것이다. 언론은 관심을 끊을 것이고, 정치인은 발길을 끊을 것이며, 진짜 보수적인 교단들은 관계를 끊을 것이다. 한기총의 미래는, 없다.
<자료 제공: 평화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