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장 김진표, 다당제 하자더니
국회의장 김진표, 다당제 하자더니
  • 최자영
  • 승인 2023.12.29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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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자영의 금요칼럼] 국회무용론

 

이미 지난 9월에 “김진표 국회의장이 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에 소선거구제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본회의 합의처리를 요구했다는 소식”이 들렸다고 한다. 거대 양당이 ‘2+2 밀실 협상’을 통해 병립형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회귀를 꾀한 바 있는데, 김진표도 이에 편승했다는 의혹이 있다는 것이다(아시아경제, 2023.9.15).

문제는 김진표가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지지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앞서 자신이 내건 입장과 서로 충돌하는 것이라는 데 있다. 연초에 그는 “승자독식의 선거제도와 정치 관계법부터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다당제를 기초로 해서 지역 간, 정치세력 간 협치가 가능한 선거제도로 가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많은 의원이 공감하고 있다” 등 취지의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이데일리, 2023.1.11).

김진표는 중대선거구제, 국회의원 정수 증원 등의 제안을 해왔다. 중대선거구제는 대통령 윤석열이 먼저 운을 뗐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또 김진표는 개헌 논의와 선거법 개정 등을 두 개 부문(트랙)으로 나누어 추진한다고 하고, 개헌 관련하여서는 행정부에 집중된 권한을 입법부인 국회로 일부 넘기고, 국무총리 임명권을 국회에 주는 방안을 거론했다. “36년 전에 개정한 헌법은 빠르게 변화하는 2023년의 대한민국에 맞지 않는 옷”이라는 전제하에 이처럼 긴요한 개헌에 있어 그는 국민이 기껏 선출한 대통령 대신 국회에서 뽑은 총리에게 행정부(대통령)의 권한을 부여한다는 데에만 주안점을 두었다.

이 같은 김진표의 언행에 모순이 있다. 그 모순은 거짓 연막과 속내의 참이 뒤섞여 있는 데 기인한다. 거짓 연막이란 “다당제를 기초로 하자”고 한 것이고, 참으로 원했던 것은 다당제가 아니라 기득의 거대 양당 구도를 그대로 지키면서, 다만 행정부(대통령)의 권한을 국회로 넘겨 국회의 권한을 더 비대해지게 만드는 것이다.

김진표는 국회에서 뽑은 총리에게 대통령의 권한을 넘길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의원내각제를 노리고 있다. 국민투표로 개헌하자면 마음먹은 대로 안 될 수도 있으니, 국민투표가 아니라 국회에서 개헌하자는 발언을 대놓고 하고 다녔다. 김진표가 국민을 물로 보고, 들러리로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다당제 하자”고 주장했던 김진표의 말이 거짓 연막에 불과하다는 점은 그가 추구한 다당제의 목적에서도 드러난다. 다당제란 원래 다양한 입장의 차이를 더 많이 반영하고, 그것을 민주적으로 조율하자는 것이다. 조율이란 갈등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김진표는 오히려 지역 간, 정치세력 간 ‘협치’가 가능한 선거제도로 다당제를 이해했다. 그가 생각한 다당제에서는 ‘갈등’과 ‘조율’의 절차는 생략하고, ‘협치’를 전면에 내세우기 때문이다.

갈등과 조율을 시도하더라도 서로의 이해와 편견이 접합점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 경우의 궁극적인 해결 방법이 다수결이다. 반면, 소수결은 과두독재를 뜻한다. 그런데 김진표의 협치는 애당초 다수결 원칙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그는 다수 민주당이 결의한 사항조차 소수 국힘당의 동의가 없었다는 이유로 거부하며 본회의 상정도 안 하는 독재를 연출해 왔고, ‘협치’라는 명분으로 민주 원칙인 다수결조차 깔고 뭉개 왔다. 지금도 계속 소수 국힘당의 동의를 전제로 한다. 독재한다고 행정부의 윤석열만 나무랄 것이 못 된다.

김진표가 “다당제를 기초로 해서 지역 간, 정치세력 간 협치”를 추구한다고 할 때, 방점은 ‘다당제’가 아니라 ‘협치’에 가 있었다. 그가 거대 양당 체제를 강화하는 ‘병립형 비례제’를 지지하는 것으로 회자하는 것이 바로 그 반증이다. 다당제나 거대 양당 체제는 그 어느 것이든 김진표에게는 별문제가 될 것이 없었던 것이다. 그가 지향하는 것은 이른바 “지역 간, 정치세력 간 협치”를 명분으로, 과반 다수당의 뜻도 무시하는 획일적 국회였기 때문이다.

한편, 한겨레신문 성한용(정치부 선임기자)은 대체로 이런 김진표의 아류이다. 의원내각제 등을 주창하는 김진표에 대해 성한용은 그의 정치적 경륜과 혜안에 눈물겹도록 감동했다는 취지로 지지 선언했다. 국회에서 뽑은 총리에게 다소간 행정부 권한을 이양하기나 국회의원 정수 늘리기, 중대선거구제로 개선하기 등 사안에서도 성한용은 김진표의 노선을 충복처럼 따랐다.

성한용은 다수결 민주적 의사결정 절차를 무시하는 점에서도 김진표를 닮았다. “2022년 대선 이후 정당 내부의 의사결정 구조에 변화가 생겼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힘당에, 이재명 대표는 더불어민주당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두 사람의 독특한 리더십과 정치 양극화로 인한 팬덤의 지지가 결합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한 점에서 그러하다.

그런데 윤석열은 모르겠고, 이재명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말하기는 곤란할 것 같다. 당내에서는 사법리스크 운운하며 혼선이 일고, 당 밖에서는 재판받으려 다녀야 하는 이재명을 그 막강한 영향력에서 윤석열과 막상막하라 여기기는 어렵겠다.

윤석열과 이재명, 두 사람의 입지가 천양지차라는 사실을 빤히 알고 있는 성한용이 왜 두 사람을 등치하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마도 거대 양당 한쪽의 윤석열과 다른 한쪽의 당 대표가 나서서 선거법을 독단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자기 주장을 펴기 위한 밑밥이 아니었을까 싶다.

또 성한용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총선을 앞두고 “친박 인사들을 당선 가능성이 큰 서울 강남 3구와 대구 지역에 공천하기 위해 총 120번의 여론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당에 전달했다”며 공직선거법 57조의 6(공무원 등의 당내 경선 운동 금지)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2018.2.1). 1심과 2심 재판부는 징역 2년을 선고했고, 박근혜는 상고하지 않아 형이 확정됐다.

당시 검찰의 수사와 기소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바로 윤석열 대통령이었다고 한다. 이어서 윤석열 대통령 스스로가 휘둘렀던 칼이 이제 대통령 자신의 목을 겨냥하고 있고, 국민의힘 경선에 개입하면 대통령 퇴임 이후 사법적 책임을 져야 할 테니, 총선 개입이나 당무 개입으로 비칠 수 있는 언행을 극도로 자제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성한용은 내다봤다.

그렇지 않다. 윤석열은 아예 내놓고 자신의 수족 같은 현 법무부장관 한동훈을 총선 비상대책위원장으로, 그것도 후임도 물색하기 전인 상황에서 전격 임명했다. 세인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이 같은 행위는 성한용이 경고한 “극도의 자제”와는 거리가 멀다.

한편, 성한용은, 선거법은 여야 대표가 만나 결정짓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여긴다. 1987년 헌법이나 1988년 선거제도도 그랬으니 지금도 그 전례를 따라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해결할 수 있다. 의원들에게만 맡겨서는 협상이 진척되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가 결단해야 한다. 두 사람의 담판으로 선거법을 전향적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같은 독선적인 결정 절차는, 여야 대표 4명이 만나 선거법을 담판 짓자고 주장하는 김진표의 ‘2+2’를 연상시킨다.

선거제도 약사로서, 1988년 총선을 앞두고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이 소선거구제에 합의한 이래로 선거구제는 지금까지 큰 틀이 바뀌지 않았고,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1인 2표제가 도입되었고, 2020년 21대 총선을 앞두고는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정당들이 공수처법과 묶어서 처리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었다.

성한용은 “정치 양극화를 해소하고, 비례성을 높이고, 지방소멸을 막는 정도의 원칙에 합의하면 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에서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차지할 수 없도록 선거법을 개정한다면 17대 국회에서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는 정당 또는 정치연합에 내각의 구성 권한을 이양하겠다’고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고 한다.

여기서 성한용의 “정치 양극화 해소”, “비례성 제고”는 “국회에서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는 정당 또는 정치연합에 내각의 구성 권한을 이양”하기 위한 징검다리에 불과하다. 성한용은, 노무현의 이름을 빌려, 궁극적으로 국회에서 내각(행정부)을 구성하는 의원내각제를 염두에 두고 있는 속내를 다소간 드러낸 것이다.

의원내각제는 행정부 대통령의 권한을 국회로 이양하는 것이다. 국민 민초가 선출하는 대통령의 권한을 국회로 옮기자는 것은 민초의 정치적 발언권을 약화시키고, 그것을 소수 과두체제인 국회로 넘겨주자는 뜻이다.

성한용이 ‘지방소멸을 막는 정도의 원칙’에 합의하면 된다고 한 견해는 치명적 의미를 갖는다. 지역이 자치권을 부여받아 활성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소멸’을 피하는 정도에 머물러 있으면 된다고 주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간신히 소멸 상태나 피한 지방은 부득이 중앙에 종속되게 된다. 이런 성한용의 취지는 국민 민초의 발언권을 약화시키고, 국회의 주도권을 전면에 부각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의원내각제를 지향하는 김진표와 맥을 같이 한다.

성한용은 민주적 의견수렴의 절차를 통해서는 선거법에서 결론을 도출하기가 불가능하므로 당 대표가 모여서 독단적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본다. 문제는 그런 그의 철학이 선거법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 의원내각제와 함께 놓고 평가하자면, 성한용은 민주적인 소양에 문제가 있는지 오로지 과두적 독재체제를 지향하고 있다.

성한용은 “정치 양극화를 해소하고, 비례성을 높이는 선거제도”를 명분으로 삼아, 실로 의원내각제를 지향한 점에서 김진표를 닮았다. 김진표가 ‘다당제’를 명분으로 삼아, 실은 ‘지역 간, 정치세력 간 협치’를 지향한 점이 바로 그와 맥락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원내각제를 통해 국민 민초의 정치적 결정권을 뭉개려는 것, 갈등과 조율의 민주적 절차를 배제하고 다수결 원리를 부정하며, 당 대표 등의 ‘리더십’을 과도하게 지향하는 점에서, 성한용은 ‘지역 간, 정치세력 간 협치’란 명분을 내걸고 국회 주도 하의 독재와 획일화를 지향하는 김진표를 닮았다.

김진표가 ‘협치’를 위해 다당제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병립형 비례대표로 회귀하려 하듯이, 성한용에게도 의원내각제만 할 수 있다면, “비례성을 높이는 선거제도” 여부는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어차피 그도 김진표처럼 국회 내 “정치 양극화를 해소”하고, 지역은 ‘소멸하지 않을 정도’의 들러리로만 세우기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지역’이란 것이 바로 국민 민초 일체가 오로지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한편, 이재명의 이른바 ‘사법리스크’, 이낙연의 신당 창당론 및 그와 이재명과의 불편한 관계를 지적하며, 이재명의 ‘팬덤’에 대해서는 부정적 견해를 피력한다(한겨레, 2023.12.16). 뿐만 아니라 민주당을 위기에서 구하는 것은 100% 이재명 책임이라 한다.

민주당을 왜 ‘위기’라고 보는 것인지, 또 위기라면 왜 이재명이 책임을 다 뒤집어 써야 하는 것인지, 도무지 설득력이 떨어진다. 성한용이 말하는 ‘민주당 위기’란 이낙연이 신당 창당하려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이낙연이 무슨 행보(액션)를 취하면, 그게 민주당 위기가 되나? 오히려 호재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일마다 발목 잡고 못 하게 막던 이가 없어지면, 더 좋은 게 아닐까?

그러니 성한용 말은 이낙연이 민주당 나가면 당이 안 되고 위기에 봉착하는 것이니, 이재명이 대표직 놓고 나가라 이런 뜻으로 풀 수 있겠다. 이낙연이 신당 창당하면 이낙연 자신은 물론이고 민주당도 손상을 입는다고 하며, 전직 대표(이낙연)의 탈당을 막지 못한 이재명에게 큰 책임이 돌아간다고 한 것이 바로 그런 뜻이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다. 성한용의 이같은 말은 독립된 개체로서의 이낙연의 행동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무시하는 것이다. 지난 대선 이전 이재명을 대장동에 연루시키도록 정보 제공한 이가 이낙연 측근이라든가, 동양대 총장 최성해가 “조국을 친 이가 이낙연”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든가, 이낙연이 지금 신당 창당하겠다고 나서는 것 등은, 사실 여부를 떠나, 이낙연 고유의 영역으로, 이재명의 책임 영역이 아니다. 억지도 정도껏 부려야지, 이재명이 대표직을 사퇴하지 않으면 신당 창당하겠다는 이를 두고, 그를 품지 않았다며 이재명에게 책임을 전가하려 드는 것인가?

성한용은, ‘배타적 팬덤(인기몰이)’의 독기가 민주당 전체를 마비시키고, 그 배타적 팬덤 때문에 이낙연과 비이재명 의원들이 이재명과 점점 더 사이가 나빠지고, 또 친이재명이 비이재명 의원들과의 경선에 대비해 배타적 팬덤을 의도적으로 자극한다고 한다. 친이재명과 비이재명 간 사이가 나쁜 것이 이낙연 탓이 아니라 다 이재명 탓이고, 이낙연계는 배타적이 아닌데 이재명계는 배타적이라고 성한용은 보았다.

이른바 ‘팬덤’을 ‘배타적‘이라 규정한 것은 성한용의 자기 편의적 독선이다. 무슨 근거로 ‘팬덤’만 배타적으로 남을 공격한다고 매도하나? 팬덤 이전에 이재명에 대한 배타적 공격이 선행했다. ‘개딸’ 같은 팬덤 발생은 이재명이 배타적 공격을 부당하게 받는다고 느낀 이들의 조바심에 기인한 것이었다.

’팬덤‘뿐 아니라 누구나 다소간에 배타적이므로, 팬덤만 나무랄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끌리거나, 혹은 배타하는 경향성을 가지므로, 독선에 치우치지 않기 위하여 민주적 다수결을 통해 결정하고 그 결과에 따른다. 당원이 다수결로 뽑은 이재명의 거취를 이낙연과 성한용이 나서서 이래저래 재단할 일이 아니다. 누구를 얼마나 탓하고 책임소재를 가릴 것인가도 의견을 수렴하고 다수결로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짝눈을 가진 성한용의 결론은 명백하다. 잘잘못을 떠나 이재명은 대표직 사퇴하라는 것. 그 이유는 전직 대표 이낙연이 그렇게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성한용의 일방적 독선은 선거제도를 당 대표 등이 결정해야 한다고 본 것과 같은 맥락에 있다. 또 국회의장 김진표가 좋아하는 여야 대표 ‘2+2’가 모여서 선거제도 결정하자고 한 것과도 정확하게 일맥상통한다. 결정권자의 범위가 축소될수록 그 결정은 편협하고 배타적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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