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이 자녀와의 관계에서 너무 힘이 들어서 상담을 받고 싶어했다. 그런데 상담을 한 번 받고는 상담을 받지 않겠다고 한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었겠지만 내게는 “상담을 하고 선생님이 하라고 하는 과제를 하려고 하니 계속 그 일이 생각이 나서 더 괴로워서 안되겠어요. 상담을 하면서 더 마음이 힘들어졌어요 “라는 것이 이유였다. 이 분만이 아니라 최근의 어떤 분도 마음이 시원해지라고 상담을 했는데 상담을 하면서 속에 있는 것을 다 끄집어내니 너무 힘들어서 상처를 치료하는 일은 당분간 뒤로 미루고 싶다고 한다. 마음이 너무 복잡하고 힘들어서 모든 에너지가 다 소진되어 힘들어하는 분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헝클어진 채 대충 문을 닫아 놓은 오래된 옷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 옷장에 숨겨진 상처를 꺼내려고 옷장 문을 여는 순간 그 동안 짓눌러 있고 서로 실타래처럼 엉겨 붙어있었던 아픔, 감정과 상처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때로는 그것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다시 대충 구겨놓고 문을 더 단단히 닫아 버리는 분들이 있다. 힘들고 시간이 걸려도 옷들을 하나하나 개켜서 옷장에 넣는 것이 아니라 임시방편으로 속에 내용이 나오지 않게 문만 더 세게 닫아 놓는 것이다.
얼마 전에 ‘새롭게 하소서’ 라는 기독교 프로그램에서 한 분이 간증하는 내용을 들었는데 아내와 너무 힘이 들어서 이혼을 했다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다시 관계가 회복이 된 커플의 이야기였다. 그 집의 아이가 부모가 힘든 상황 가운데 있을 때는 너무나도 착하고 잘 돕는 아이였는데 엄마, 아빠가 회복이 된 후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을 때 아이 속에서 엄청난 분노가 나와서 부모들이 마음이 너무 아팠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위에서 이야기한 사례들과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엄마, 아빠가 심하게 싸우고 별거를 하고 이혼을 할 때는 구겨진 옷과 같은 자신의 감정적 상처를 표현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아이는 그 아픔의 감정들을 옷장 속에 가두어 두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옷을 꺼낼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이 되자 옷장 속에 구겨두었던 옷들이 우르르 나오는 것처럼 억압되었던 감정적 상처가 표현이 되게 되었던 것이다.
부모는 아이가 갑자기 나빠졌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쩌면 아이가 건강해지기 위한 과정으로 속에 담겨 두었던 부정적 감정을 상처 치유를 위해 내어 놓았던 것이다. 많은 경우, 부모들은 자녀가 문제행동을 보일 때 아이를 고치기 위해서 상담소로 데리고 오는데 가끔은 아이가 건강해 지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더 나쁜 감정을 표현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부모는 쉽게 “상담을 해도 소용이 없네요. 아이가 더 나빠졌어요.”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쩌면 아이는 더 건강해지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강하게 표현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필자가 예전에 훈련을 받았던 국제 선교 단체인 “예수 전도단”이라는 곳의 열방대학에서 상담 코스가 있어서 그 공부를 하시는 분들을 종종 보게 되었는데 가끔 “자기주장”, 또는 “경계선 (boundary)”의 강의를 듣고 난 분들이 갑자기 너무 이기적으로 되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속으로 “상담을 공부하시는 분들이 왜 저래? 배운 것을 왜 저렇게 사용하지? 라고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자기주장을 하지 못하던 사람이 또는 타인과의 경계를 건강하게 형성하지 못하고 의존적이던 사람이 자기주장을 배우고 적용을 하려다 보니 좀 더 강한 반동이 나타날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고 그렇기에 그 강한 감정들도 성장하는 한 과정에서 경험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한방에서 ‘명현현상’이 있는 것처럼, 상담에도 때로는 명현현상 같은 것을 경험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좋아지라고 상담을 받고 심리치료를 받은 것 같은데 일시적으로 더 감정적으로 어려워지고 관계가 힘들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결국은 더 좋아지기 마련이다. 헝클어진 옷장의 옷이 한꺼번에 다 쏟아져 나오면 당황스럽고 어지러워져 있고 복잡한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다 쏟아져 나온 것을 하나하나 정리해서 버릴 것은 버리고 사용할 것은 다시 잘 접어서 옷장 속에 넣게 되면 더 이상 옷장은 쏟아지지 않게 되는 것이고 쓰고 싶은 것을 언제든지 꺼내어 쓸 수 있게 되는 안전한 옷장이 되는 것이다. 임시방편으로 닫아 놓은 옷장은 언제 쏟아내지 모르기 때문에 내면이 늘 불안하고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감정을 다루어 힘들어 하는 내담자들에게 일시적으로 감정이 더 힘들고 어려울 수 있다고 말해주기도 하고 한방의 명현현상하고 비슷한 것이라고도 말해준다.
그렇게 해서 용기를 내어 나와 여정을 끝까지 함가는 사람들은 옷장을 상당히 많이 정리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경험한다. 처음 고통이 너무 크다고 중단해 버리는 사람은 자신의 헝클어진 옷장을 더 이상 두려워서 열지 못하게 되어 마음 한 켠이 늘어놓고 정리가 되지 않은 채 힘들 게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된다. 물론, 내 헝클어진 옷장을 한꺼번에 활짝 열어서 온갖 내용물이 한꺼번에 다 쏟아내 버리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방법일 수도 있다. 다시 주워 담는 데 시간도 많이 걸리기도 한다. 그래서 상담사는 그 옷장 문을 함께 붙잡아 주는 역할을 한다고 본다. 함께 문을 잡아 주어서 문을 조금씩만 열게 해서 확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열어서 보고 꺼낸 것을 함께 접어서 예쁘게 옷장에 다시 넣을 수 있도록 옆에서 돕는 것이다. 때로 확 쏟아지더라도 그 옷장을 다시 정리할 수 있도록 힘을 낼 수 있게 함께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힘들어서 무조건 내 마음의 옷장을 꼭꼭 잠그고 있는 분들은 용기를 내어서 옷장을 조금씩 열어보라고 권면하고 싶다. 좀 힘든 명현현상이 있지만 건강해지는 것이 중요하기에 마음을 치료하는 상담사 또는 심리 치료사들의 도움을 받아서 마음의 옷장을 잘 정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아이들은 평소에 조금씩은 자신의 물건들을 정리하고 옷장을 정리하는 일을 할 수는 있지만 대청소를 하거나 아주 깨끗하게 하는 일에는 엄마의 도움이 필요한 것을 본다. 혼자서 할 수 없는 마음의 옷장 정리를 전문가를 통해서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깨끗하고 안정된 마음을 소유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게 되리라 생각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이지만 눈에 보이는 것만큼 중요한 것임으로 마음의 옷장을 잘 정리하는 용기를 내어서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권면해 본다. / 호주기독교대학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