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노동자 참극 재발하지 않도록 법률·제도보완·사회 인식변화 필요
13일 총 117개 노동시민사회단체·정당이 참여해 결성한 ‘고 최희석 경비노동자 추모·가해자 처벌·재발 방지 촉구 추모모임(아래 경비노동자 추모모임)’은 강북구청 앞에서 서울시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에서 근무하다 입주민 A씨의 지속적인 폭행·폭언·협박·괴롭힘 등 갑질 행위로 힘들어 하다 지난 10일 본인 자택에서 투신자살한 고 최희석 경비노동자 촛불 추모식을 열었다.
이날 추모식에서 대학생 이인선(22)씨는 추도사를 통해 “우리 곁에서 우리를 위해 궂은 일 마다하지 않고 일하는 수많은 분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저 스쳐지나가는 분들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나와 관계있는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고 하대하는 이들도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하지만 우리 사회는 홀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수많은 분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있다”며 “스쳐지나가는 사람이라 생각하는 모두가 우리 국민이고 우리 가족임은 변치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 최희석 경비노동자 선생님과 관련한 소식을 처음 들었던 그 날 결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우리 대학생들도 곧 노동자다. 만약 노동자를 향해 곁에서 때리면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반문하고는 “그것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라며 “내 일이기에 책임지고 가해자 처벌과 재발 방지를 위해 목소리를 내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고 최희석 경비노동자께 헌정한다”면서 자작시를 낭송했다.
<우리 경비원 선생님>
어느 한 날 한 시
우리를 지켜주는
묵묵한 이가 있었다
그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도 받지 않아도
결코 웃음을 잃지 않았다
아파도 아프다 하지 못하는
서러워도 서럽다 하지 못하는
일하는 동안의 그였다는 걸
누가 알려고나 했을까
문 앞에 들어서는 아이는 부른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하고 말이다
문 앞에 들어서는 어른들은 부른다
아저씨 아저씨 하고 말이다
항상 웃었을 그였기에
누군가의 말과 행동이
크게 느껴졌을 것이다
도움의 손길이 있음에도
끝내 그는 그 아픔을 안고
우리를 떠났다 눈물과 미소와 함께
그를 스쳐지나갔더라도
그 시간은 추억이 되리라
그 생각에 온몸이 아프다
어쩌면 그는 우리에게
선생님일지도 모른다
나사못도 소홀히 하지 말라고
가르쳐주시는 우리 선생님
선생님이 편히 쉬시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다하자
죄인에겐 죗값을 치르게 하고
주위 모든 것을 중요시하자
이 자리에 참석한 류호정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은 “우선 경비노동자 최희석님을 추모한다. 슬프다. 평소에는 투명인간으로 이름 없이 임시 계약직 노인장을 줄여 ‘임계장’으로 불리다 이렇게 목숨을 잃고서야 ‘최희석님’ 이름이 불러지는 것이 너무나 슬픈 일”이라면서 “이천시 물류센터 산재사망사고도 그랬다. 이름 없이 일하던 노동자들이 죽고 나서야 호명됐다. 생각한다, 기업살인법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이번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라고 안타까워 했다.
류호정 당선인은 “이번에도 그렇다. 갑질·고용불안·편견에 시달리는 경비노동자들의 처우개선 문제가 진작 해결됐다면 어땠을까. 게다가 이번 일은 처음이 아니다. 경비업법·근로기준법은 경비노동자를 지키지 못했다”고 짚고 “직장 내 괴롭힘 금지조항 확대적용과 휴게 시간·휴게 공간 보장이 이제라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무엇보다 사람이 죽고 나서야 대책이 나오는 현실은 없어져야 한다. 우리는 이제 죽음으로 죽음을 막는 게 아니라 (살아서) 죽음을 막아야 한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정의당이 앞장서겠다”고 결의하면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추모했다.
이 추모식에서 김은진 민중당 공동대표는 추도사를 통해 “우선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추모한 뒤 “우리는 늘 이야기한다. 더 이상 일터에서 죽는 일이 없도록 하자. 더 이상 노동자가 무시당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자.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 일하는 사람이 행복한 일터를 만들자고 말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그러나 정말 죄송하다. 1970년 ‘근로기준법을 지키라’ 요구하며 전태일 열사가 돌아가신 지 50년 반세기가 지났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같은 구호를 외치고 일터에서 돌아가신 노동자를 떠나보내며 울음을 삼키고 분노한다”고 했다.
아울러 그는 “정말 죄송하다. 최소한의 법도 지키지 않는 일터, 조그마한 권력에도 갑질하는 사회를 아직 바로잡지 못해 죄송하다. 어쩌면 뻔한 이야기를 또 해서 죄송하다. 그래도 꼭 약속한다. 가해자가 제대로 된 사과를 하고 그에 걸 맞는 처벌을 받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끝으로 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겠다. 반드시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만들겠다. 반드시 노동자가 안심하고 일하는 일터를 만드는 제도가 자리 잡게 하겠다”고 결의하면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거듭 고 최희석 경비노동자를 추모했다.
이 자리에서 강북구의회 구본승 구의원은 “억울한 경비노동자 죽음이 재발되지 않도록 제도 마련과 안전망 확충에 힘써야 한다”면서 “현재 강북구의회에서 조례 제정을 논의 중인데 개별 조례로 「서울특별시 강북구 공동주택 및 상가 경비원 노동인권 보호조례」(가칭) 제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구 의원은 “강북구청이 앞으로 할 일 중 경비노동자에 관한 갑질·근무환경 실태조사·신고센터 설치가 시급하다. 또한 지역인식개선을 위해 구청이 경비노동자 인권존중 캠페인에 나서야 한다. 이미 서울 16개 자치구에서 노동권익센터가 서울시 지원으로 설치·운영(또는 예정) 중”이라고 밝히고 “강북구에도 노동권익센터를 설치해 지속적으로 노동권익 보호활동을 펼쳐야 한다”고 역설했다.
빈소를 지키느라 추모식에 참석하지 못한 고 최희석 경비노동자 두 자녀는 편지를 통해 “사랑하는 우리 아빠 나야. 아빠가 그렇게 아끼는 큰 딸이랑 작은 딸. 이제 부를 수 없는 우리 아빠. 아빠가 그렇게 아픈 줄도 모르고 정말 미안해. 전화하면 언제나 아빠 걱정은 하지 말라며 잘 지낸다는 말만 했던 아빠였는데...”라면서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이어 두 자녀는 “겁 많고 마음 여린 우리 아빠. 혼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라고 되새기면서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입관식 때 평소처럼 누워있는 것 같이, 아니 자는 것처럼 보였는데 아빠 몸은 차갑기 만 했고 아무리 불러도 눈도 안 뜨고 손도 안 잡아주고...”라며 또 다시 말을 잇지 못하다 “보고 싶어 아빠, 사랑해 아빠”라고 끝맺었다.
두 자녀는 또 고 최희석 경비노동자를 도와주고 억울함을 풀어주려 했던 입주민들에게 “여러분들이 빈소에 찾아주시고 적극적으로 우리 아빠를 위해 노력해주셔서 감사하다. 이 세상에서 아빠를 제일 사항하는 큰 딸 작은 딸 올림”이라고 전했다.
앞서 총 117개 노동시민사회단체와 4개 정당이 참여해 결성한 공동고발인단은 이날 오후 3시 서울북부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뒤 민변 노동위원회 류하경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한데 이어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를 엄중 처벌해 달라’는 고발장을 서울북부지검에 접수했다.
한편 유족은 가해자가 여전히 반성하지 않는 것과 고 최희석 경비노동자가 당한 억울함을 여론화하기 위해 12일로 예정했던 발인·노제 등 장례 절차를 5일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한 뒤 14일 새벽 고 최희석 경비노동자가 근무했던 경비실 앞에서 노제를 지냈다.
이 노제에 참석한 한국비정규네트워크 이남신 소장은 “오늘 새벽 강북구 우이동 성원상떼빌아파트에서 일하던 경비노동자 최희석 님 장례발인 후 진행된 노제에 다녀와 맘이 참 무겁고 암울하다. ‘착한 우리 아빠 죽인 살인자 나오라’며 울부짖던 따님 몸부림을 곁에서 지켜보며 가슴이 미어졌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 소장은 “가해자인 갑질 입주민은 청와대 국민청원이며칠 만에 30만 명을 훌쩍 넘어섰는데도 진심어린 사과는커녕 반성할 기미조차 없다. 정말 얼굴에 철판을 깐 파렴치한으로 우리 사회에서 축출해야 할 사람 같지 않은 자다. 반드시 구속수사 후 엄중하게 형사 처벌해야 하고 보상책임도 무겁게 물어야 한다”고 사법 당국에 촉구했다.
또한 그는 “다시는 이런 참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법과 제도도 제대로 보완하고일부 입주민을 비롯해 아파트경비노동자를 홀대하고 경시해온사회적 인식도 바꿔야 한다”고 국회와 정부, 국민에게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