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지금 진보정당이 국정을 맡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진보 정당의 대통령이다. 진보정당은 진보적인 정책을 편다. 국민이 그 정책을 보고 선택했다고 할 수 있다. 진보정당은 평등, 평화, 분배, 인권, 노동 등에 가치를 둔다.
이 같은 정책을 펼치는 문재인 정권에 대해, 얼마든지 반대의견을 낼 수 있다. 실제, 우려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크다. 그렇더라도, 진보정당이 진보적인 정책을 펼치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한 정책은 악한 것이거나,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일 뿐이다.
진보정당과 보수정당이 교체되어, 집권하는 것은 역사 발전에 도움이 된다. 헤겔의 ‘정반합(正反合)’의 이론대로, ‘합’이란 ‘정’의 긍정적인 부분과 ‘반’의 긍정적인 부분이 합쳐져서, ‘합’이라는 새로운 ‘정’이 나타난다. 여기서 ‘반’은 긍정을 위한 ‘반’, 곧 ‘합’이라는 새로운 ‘정’을 찾기 위한 과정이어야 한다. ‘정반합’이 아니라, 반대를 위한 반대, 즉 ‘정반반(正反反)’이 되면 안 된다.
안타까운 것은, 요즘 정치는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적대시하는 것이다. 저급한 정치에서는 상생이란 찾을 수 없고, 그저, 너 죽고 나 살기식이다. 문재인 정권을 악으로, 혹은 사탄으로 규정하고 당장 끌어내리려고 한다. 안 그래도, 문 정권은 2년 남짓 남은 정권이다. 내년 4월 총선의 엄혹한 국민의 심판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왜 그리 조급한가. 설마 그 안에, 나라를 김정은에게 갖다 바치기라도 하겠는가. 그게 가능한 얘기인가.
민주국가에서 정권의 심판은 선거를 통해서다. 그런데도, 청와대 앞에서 철야를 하며, “문재인은 하야하라”, “문재인을 끌어내리라”고 외치고 있다. 이 일을 세속 정치인들이 주도한다면 그러려니 하겠으나, 극우 기독교 세력이 주도하고 목사가 앞장서고 있다. ‘예수 이름으로’, ‘교회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다. 함께 하지 않는 목사들을 향해, ‘정교분리에 숨어 있는, 비겁한 자들이라’고 비난한다. 자기들만이 의를 위해 투쟁하는 선지자들이라고 도취하고 있다. 그러나 그건 아니다. 나가도 너무 많이 나가 것이다.
교회는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한다. 아무리 급하더라도, 방법도 선하고 민주적이어야 하고, 또한 믿음의 방법이어야 한다. 대통령을 향해 ‘간첩’이니, ‘놈’이니, 하는 육두문자를 쓰고 ‘계시’와 ‘주의 음성'을 언급하면서, 저주와 언어폭력을 하고 있다. ‘나라가 공산화 되면, 교회도 무너지고 신앙생활도 할 수 없다.’고 위기를 조장하며, 교인들을 차가운 아스팔트 광장에 끌어들여, 혹세무민하고 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분별력 있는 행동인가.
“이스라엘의 회복이 이때입니까?”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그건 너희가 알 바가 아니요. 오직 성령을 받고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교회의 최대의 관심은 뭐니 뭐니 해도, 복음전파와 하나님의 나라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신 것도 복음을 위한 것이다. 교회는 오로지 이 복음에 목숨을 걸아야 한다. 이것이 주님의 지상명령이다. 교회가 이 복음을 제쳐놓고 정치이념에 빠지면 안 된다. 그것은 복음을 훼손하는 것이다. 교회는 좌도 우도, 여도 야도, 진보도 보수도 아닌, 이 모두를 십자가의 사랑으로 녹여내어, 하나 되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교회는 갈등의 당사자가 아니라,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
교회가, 세속정치와 특정 정치이념에, 목맬 것이 무엇인가. 꽃과 같이 시들어버릴, 세상권력에 목맬 것이 무엇인가. 정치권력의 속성을 모르는가. 소탐대실이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더 많다. 기독교의 품위가 손상될 것이다. 복음이 왜곡되고 복음전도에 장애가 된다. 교회는 오로지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에 힘써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는 생명과 사랑과 평화와 정의의 실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