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자영의 금요칼럼]국회무용론(57) 힌동훈과 이재명이 닮은 점, 이재명과 조국이 닮은 점

2024-10-27     최자영

용산 가서 “할 말 하고 나왔다”는 한동훈과 이재명,
삼척동자도 아는 뻔한 결론에 거기는 왜 가나?
‘정치’검찰이 따로 있는 것 아니고, ‘검찰’ 조직 자체가 문제
‘정치검찰’ 운운하는 민주당은 위정자만 대수, 검찰에 시달리는 민생 백안시
이재명이 가진 검찰 견제 카드가 종이호랑이 공수처밖에 없어
“국민이 주인”이라는 이재명은 국민의 판단 능력이 당장은 부족하다고 하고,
“깨어있는 시민” 운운하는 조국은 정작 시민 앞에 공언한 총선 공약도 어겨
조국혁신당 강령 제1호 검사장 민선제 물 건너간 지 오래

최근 한동훈(국힘당대표)이 용산에서 윤석열(대통령)과 ‘독대’하고 나온 다음, “나는 필요한 할 말을 가감 없이 다 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한다. 그 뜻은 자기 할 말만 하고 나왔고, 그 이상의 소득은 없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런 말을 듣는 것이 처음이 아니다. 얼마 전 이재명(민주당대표)이 윤석열과 만난다고 들어가더니, “할 말 다 하고 나왔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뿐 아니다. 이번 21일 윤석열과 한동훈의 면담을 앞두고, 이재명이 “한 대표가 대통령을 잘 설득해 국정기조 전환을 끌어내고 정치를 살려내기를 바란다”고도 말했다.

그때 그 “할 말 다 하고 나온” 사실을 두고, 이재명 지지자들은 속 시원하게 잘 했다고 굉장한 성과를 거둔 것처럼 이재명을 응원했다. 기자들이 있는 공개석상에서 윤석열이 이재명에게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비공개로 넘어가려는 찰라에, 이재명이 ‘잠깐 실례’의 기회를 포착, 양해를 구한 다음, 준비해 간 서면을 참조하여 할 말을 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한동훈과 이재명이 윤석열과 독대인지 뭔지를 하러 들어갔다는 점이다. 이것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대외적 홍보용(제스추어)이다. 소득이 없는 줄 뻔히 알면서 할 말을 하러 용산을 찾아 들어가는 것은 대외적으로 표방하는 것 외에는 의미가 없다. 주요 보직을 차지하고 앉은 이들이 실없이 홍보활동을 하고 있고, 이런 것을 ‘쇼’라고 한다.

한동훈의 ‘쇼’는 속이 들여다보이는 것이다. 그는 ‘김건희 특검’에 시종일관 반대하면서, 하릴없이 변죽만 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별 영양가 없는 주제를 가지고는, 짐짓 대통령실 혹은 친윤계와 갈등하고 있는 모양새를 연출한다. 김건희의 활동을 자제하라 했다든가, 특별감찰관을 임명하라고 주문했더니 국힘당 원내대표 추경호가 반대하고 나섰다든가, 밥은 안 주고 콜라만 주더라든가, 원탁을 요구했는데도 네모난 탁자에 앉히더라든가 하는 것 등이다.

김건희가 활동을 자제하건 안 하건 그것은 개인의 영역일 뿐, 공적으로 그에게 지워진 혐의 관련한 문제와는 무관하다. 활동 자제 운운하는 것은 주가조작 등 중차대한 혐의에 관련한 공적 사안을 사적인 것으로 전환하려는 의도적 꼼수, 아니면 그 같은 효과를 낳는다. 검사도 ‘알현 조사’를 하는 마당에, 대통령실에 ‘특별감찰관’을 임명하는 것이 무슨 대수가 될 것인가. 밥 안 줘서 콜라 마시고 나온 사실도 사적인 영역으로, 공적 사안의 해결과 전혀 무관하다. 한동훈이 무얼 얻어 먹고 나온 것이 공적으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푸대접이라고 떠드는 행위 자체가 친윤-친한이 갈등한다는 사실을 부각하는 데 기여할 전망이다. 의도적 연출이 아니라면, 효과면에서 그러하다.

더 웃기는 것은 한동훈이 원탁 운운한 사실이다. 원탁은 둘이 아니라 적어도 3인 이상이 회동할 때 상석(주인, 호스트)이 따로 없다는 뜻에서 쓰이는 것이다. 둘이 만날 때 네모난 탁자에 서로 마주보고 앉는 것은 서로 평등하다. 둘이 만나러 들어가면서 원탁 운운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탁자가 네모난 사실을 두고, 한동훈이 용산에서 홀대받은 것처럼 떠드는 것이 엄살이다.

한동훈과 언론이 같이 합창하는 영양가 없는 사실들은 세간의 눈과 귀를 흐리는 연막인데, 목적은 두 가지로 자못 분명하다. 한편으로, 김건희 특검은 결사코 반대한다는 것, 다른 한편으로는, 이른바 한동훈 및 ‘친한계’가 윤석열, 김검희 등 ‘친윤계’와 갈등하고 있다는 ‘프레임(구조 틀)’을 부각하겠다는 뜻이다. 전자는 윤석열과 김건희를 성역으로 지키겠다는 것, 후자는 윤석열에 대한 지지도가 나날이 하강하는 시점에서, 한동훈을 차별화하고 떼어 놓으려는 부득이한 고육책으로 귀결된다.

이 두 가지가 다 권력을 뺏기지 않으려는 목적에 기여하는 것이고, 여기에 공익이나 국민 민중의 이해는 개재하지 아니한다. 그런데 권력 지향적 ‘권력충(蟲)’의 행태가 한동훈뿐 아니라 여야를 막론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가중된다. 민중을 백안시하는 것이 한국 위정자의 보편적인 현상이며, 민주당 이재명, (조국)혁신당의 조국도 예외가 아니다.

‘국민이 주인’이라는 표어를 곧잘 내세우는 이재명이 검찰을 견제하기 위해 공수처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한다. 지금까지의 공수처 이력을 들여다보면, 이런 말이 뜬금없다. 출범 당시부터 쪼그라들어 검사가 20여 명밖에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공수처는 제 구실을 못한 종이 호랑이에 불과하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런 맹탕 공수처를 두고, 이재명이 검찰을 견제하는 기구로서 공수처 운운하는 것이 딱하다. 다른 대책이 없다는 뜻이다.

사실 공수처가 언제나 종이 호랑이였던 것은 아니고, 엉뚱한 데 가서 칼을 휘둘러댔다. 고위공직자 범죄를 수사하라고 도끼 만들어 맡겨두었더니, 공수처에서 그것을 엉뚱하게도 피래미 난도질 하는 데 사용했다. 공수처는 서울시 교육감 조희연을 제1호로 기소하여, 일전에  대법원 유죄 확정선고가 났다. 조희연이 연루된 혐의는 전교조 해직 교사 몇 명을 특별채용했다는 것이다.

공수처에 내재한 문제는 수사 인력의 다소를 별론으로 하고 그 방향성에 있다. 공권력을 오남용한 공직자의 범죄는 국민 민중의 기본권을 침해하게 된다. 공수처에서 다루어야 하는 것은 일반 경찰, 검찰이 다루기 어려운 고위공직자 범죄여야 하고, 특히 국민 기본권을 침해하는 데 그 권력을 오남용한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조희연의 경우는, 설사 그 혐의에 타당성이 있다 하더라도, 일반 경찰, 검찰이 수사하면 되는 것이었다. 더구나 해직교사 특별채용은 그 자체로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공직자의 중대범죄가 아니라, 오히려 기본권을 침해당하고 억울하게 해직된 교사를 구제하는 것이었다. 고위공직자 중대범죄의 범주 자체에 포함되는 사안이 아니었다.

아무리 인력을 변변하게 갖추지 못 했다고 해도, 25명 검사는 적은 숫자가 아니다. 그런데 수년이 흐르도록 기소한 것 자체가 2, 3건에 불과하고 그 결과도 오리무중인데, 그중 딱 하나, 딱 부러지게 기소해서 끝을 본 것이 조희연 사건이었다. 일을 하긴 해야 하겠는데, 정작 고위공직자 범죄에 손대기는 겁이 나서, 공수처가 만만한 상대를 골랐다. 공수처 제1호 기소건이 조희연 해직교사 특별채용이라는 사실은 공수처의 흑역사로 만세에 길이 남아 전할 것이다.

이런 공수처를 두고 이재명이 엉뚱하게도 검찰조직을 견제하는 기구로서 인력을 강화하겠다고 공언하고 나섰다. 그 나물에 그 밥 같을 전망의 공수처를 두둔하는 이재명의 발언은 검찰 개혁 자체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음을 드러낸 것이다. 그뿐 아니다. 이재명이 검찰 대신 공수처 조직 강화할 것이라고 했더니, 지지자들 간에 "검찰에 대한 통쾌한 반격"이라는 환호가 등장했다. 그렇지 않다. 공수처와 검찰은 현재로서 여차하면 연통하는 한통속 사촌간이다. 

민주당이 검찰조직 자체의 개혁을 포기한 사실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증거가 있다. 그것은 ‘정치’검찰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모든 검사가 아니라 ‘정치’검찰만 문제가 된다는 말이다. 검찰 내부에 ‘정치’검찰과 그렇지 않은 성실한 검찰이 따로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정치검찰’의 논리는 두 가지 문제를 갖는다. 첫째, 정치검찰은 현재 검찰조직에서 구조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일 뿐, 사람의 본성 혹은 성향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누구나, 당근이나 협박 등 상황에 따라 정치검찰화 하게 된다. 둘째, 검찰의 고무줄 잣대 기소권 행사는 위정자들에게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다. 일반 국민 민중이 검찰의 불공정한 처사에 의해 보는 피해는 일상적, 보편적인 것으로 딱히 정치검찰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한편, 혁신당 대표 조국은 검찰에게서 수사권을 빼앗아 분리하고, 검찰은 기소만 하는 기소청으로 남을 것이라는 대안을 제시했다. 기능을 두 개로 쪼개면, 합친 것보다는 더 나을 수도 있다고 하겠으나, 거기에도 한계가 있다. 경찰과 검찰이 한통속이 되고, 공수처와 검찰이 다소간 주거니 받거니 하는 현상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세월 가면, 수사청도 기소청도 관료기구로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그 나물에 그 밥이 될 전망이다. 조국이 말하는 기소청, 중수청(중대범죄수사청)은 관료기구라는 점에서 지금의 공수처와 같이 십중팔구 관료기구로서의 한계를 탈피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전망은 태생적으로 예정된 것이다. 

조국이 갖는 관료주의적 한계는 총선 공약 검사장 민선제를 포기하고 이것을 검찰수사심의위원회로 변질시킨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각종 심의위원회는 현재 검찰 내에도 이미 존재하던 것으로서 진작부터 빛 좋은 개살구로 검찰 관료주의의 들러리 구실 해오던 것을 보면서도 그러하다. 

기이한 것은 조국이, 한편으로, 조국혁신당 강령 제1호로 내세웠던 검사장 민선제를 포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총선에서 13표 비례의석을 몰아준 "깨어있는 시민들"에게 감사하고 치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그것은 앞으로도 여전히 그 "깨어 있는 이들'"의 변함없는 지지가 있을 것이라는 소망을 담은 것이다. 강령 1호를 까뭉개버리고도 여전히 조국혁신당을 성원해주는 이를 바라는 조국은 시민이 "깨어있는" 것이 아니라 까마귀 고기를 먹고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으로 보는 것이 틀림없다.

별 소득 없을 줄로 뻔히 알면서, 윤석열과 독대한다고 떠들어댄 한동훈과 이재명이 닮았다. 또 공수처를 검찰 견제책으로 내세우는 이재명은 검찰개혁 자체에 대한 의지가 없다는 점에서 조국을 닮았다. 이들이 갖는 공통점은 권력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위정자들 중심으로 사고한다는 점이며, 거기에 일반 국민 민중은 배제되어 있다. 정치에 개입할 수 있는 발언권 자체가 국민 민중에게 없기 때문이다.

윤석열이 “두들겨 맞더라도 내 길을 가겠다”고 했다 한다. 어딘가 스님을 만난 자리에서 비장한 어조로 ‘순교자’ 같은 행색을 연출한 것이다. 여기서 ‘내 길 가는 것“의 주체는 윤석열이다. 그것은 그이가 무슨 짓거리를 하든 견제할 수 있는 제도나 권력이 따로 없다는 말이다. 제도의 부재는 윤석열을 나무라서 될 일이 아니다. 그를 견제할 제도조차 갖추지 않은 것은 국회가 입법의 의무를 유기했기 때문이다. 두들겨 맞을 짓거리를 한 이가 여전히 제 갈 길을 가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그 잘잘못을 불문하고 여전히 제 길을 가겠다고 호언하는 것은 그 권력이 ’제왕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다소간의 권력에 대한 견제, 처벌의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논리는 대통령뿐 아니라 국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국회가 직무를 유기하고 변죽만 울리고 있을 때는 국회의원도 탄핵해야 한다. 그들을 탄핵하는 주체는 그들을 뽑은 국민 민중이어야 한다.  대통령이 못하면 처벌하고 쫓아내야 할 뿐, 대통령의 권한을 ”국회 혹은 국회에서 뽑는 총리에게로 옮기자“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