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자영의 금요칼럼]국회무용론(43) 근 40년 만에 개헌을 논하는 조국의 눈에 국민 발안권은 간데없고 대통령 4년 중임제밖에 안 보여
윤석열, 김건희를 비난하는 데 그치는 것은 제도 개선과 무관하게 그 권력만 탐하는 것
오늘 이 나라의 질곡은, 윤석열, 김건희 이전에, 남에게 의지하기 좋아하고 주권자 행세할 줄 모르는 국민 민초 자신에게서 비롯
(조국)혁신당이 민주당에 대해 국회 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완화해주도록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고 한다. 혁신당은, 한편으로 192석이라는 거대 야권 창출의 '공'을 강조하고, 다른 한편으로 교섭단체 요건 완화가 야권의 '연합 전선' 구축를 위한 선제조건이라고 했다고도 한다. 총선 전 민주당이 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완화하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에 그 이행을 촉구한다는 것.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다. 조국혁신당은 총선 전 민주당이 자기에게 한 약속은 잊지 않고 지켜줄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자신들이 시민 민중 앞에 한 약속은 까먹거나 변질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을 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국은 총선 공약으로 첫째, 지검장 민선제를 내걸었다. 그런데 총선이 끝나자 말자, 조국혁신당 정강 제1호로도 명기되어 있다고 하는 지검장 민선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검사장 민선제가 ‘수사심의위원회’라는 형식으로 아예 바뀌어 버렸다. “검찰제도 전면개혁”을 내세운 입법 토론회(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 조국혁신당 검찰독재족종식특별위원회, 2024.6.12.)에서 (조국)혁신당 박은정 의원이 한 말에 따르면, “우리(혁신당)가, 시민이 검찰 권력을 견제하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했으므로, 시민으로 구성된 ‘기소심의위원회’를 만들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조국은 ‘3년은 너무 길다’고 함으로써, 윤석열의 남은 임기 3년이 끝나기 전에 어떤 식으로든 조치를 취할 것처럼 시민 대중에게 호소했다. 총선이 끝난 다음 “3년은 너무 길다”라는 것이 윤석열 탄핵을 뜻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에, 조국은 “아니다, 탄핵을 하려면, 윤석열의 위법 행위가 더 확실하게 더해져야 하고, 지금으로서는 부족하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 같은 조국의 입장 변화는 총선에서 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내팽개치기로 결심했다는 증거이고(지검장 민선제 포기), 또 뜨거운 감자(윤석열 탄핵)는 가능한 한 피해가자는 내심의 반증이라 하겠다. 자신이 표를 얻기 위해 마구잡이 던진 구호, “3년은 너무 길다”를 나름 ‘탄핵’으로 이해 혹은 곡해한 시민 민중이 휑하니 속은 느낌을 갖는 것에 대해서는 ‘아몰랑’이 되었다.
문제는 조국의 이 같은 입장은 (조국)혁신당의 국회 교섭단체 구성 여부와 무관하게, 몇 가지 함의를 갖는다. 그것은 조국, (조국)혁신당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흘리고 지나가는 것,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노정하는 것이므로, 중차대한 의미를 갖는다.
첫째, 자신이 민중을 향해 한 약속은 지키지 않으면서, 민주당에게 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완화하겠다고 했으니 그 약속은 지키라고 요구하는 점에서, 조국은 일방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자기 당이 국회 내 교섭단체를 구성하고 싶다는 것은 형식상 측면에서 권력 지향적 욕구를 표방한 것이다.
그 권력을 가지고 조국은 물론 지향하는 바가 있을 것이나, 그 지향점은 민주 혹은 민중의 정치적 발언권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드러난다. 총선 이후 개헌을 위한 기자회견을 했는데, 그 주요 안건은 대통령 4년 중임제였다. 현행 1987년 헌법이 만들어진 후 근 40년이 다 된 지금에 이르러 개헌을 입에 올리면서, 대통령 권력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조국의 눈에 그 외의 것은 보이지 않거나 부차적인 것이 확실하다.
지금 한국 정치의 질곡은 대통령 5년 단임제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5년 단임제이건 4년 중임제이건, 잘만 하면 되는데, 그게 안 되는 것이 문제이다. 그 큰 책임은 행정부를 견제하지 못하는 국회에 있다. 국회가 못 하면, 국민이 나서서 하도록 하면 되는데, 그것을 국회가 가로막고 있다. 이미 반세기를 훌쩍 넘긴 유신독재가 빼앗아 간 국민 발안권, 소환권 등을 여전히 국회가 국민에게 돌려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조국)혁신당은 국회교섭단체를 구성하고,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을 지향할 것 같다, 그런데 그 4년 중임제는 조국만 들고 나온 것이 아니다. 이낙연이 주창한 의원내각제를 다시 주창한 김진표, 또 그 김진표가 뜻을 모았다고 하는 윤석열, 뿐 아니라 한 2년 전에 민주당 대표 이재명, 또 최근에는 국힘당 나경원까지 모두 나서서 떠들고 있는 것이 대통령 4년 중임제이다.
대통령이 독재를 하고 있으면, 그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다시 중임제로 하여 대통령이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지 않다. 대통령의 권한은 안정시킬 방법보다 독재가 되지 못하도록 견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고, 국회에서 견제하지 못하거나 견제를 소홀히 할 때는, 주권자 국민이 나설 수 있도록 길을 터야 하는 것이다. 또 4년 중임제로 윤석열 임기를 4년으로 줄이기 위한 것이라는 허황한 소리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4년 중임제는 윤석열 개인의 거취와 연관시켜 논의할 사안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여야를 막론하고 대통령 4년 중임제를 떠드는 이들의 공통점은 국민 민중을 들러리로 보고, 정치적 발언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정치가 위정자들끼지만 권력을 나누어 갖는 체제로 이해하고 있다. 대통령과 의회(국회)가 서로 어떻게 권력을 나누어 갖는가 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대통령 4년 중임제는 곧잘 의원내각제와 맞물려 등장하곤 한다.
지금 국힘당 대표선출 전당대회를 두고 서로 치고받고 난리 치는 것을 보면서도 의원내각제, 혹은 준내각제(상원, 하원을 모두 투표로 선출하는 것) 운운하는 것을 보면 신통하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협치'를 내세워, 흔히 여야가 야합하며 국민 민초를 우롱하는 국회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둘째, 조국이 여야 간 약속만 대수로 여기고 시민 민중에 대한 약속을 초개같이 무시할 수 있는 것은 그 자신의 잘못이라기 보다 현실의 권력 구조상 헛점를 노정하는 것이다. 정당의 위정자들만 정치적 발언권을 가지고 있고, 민중이 정치적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길이 제도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총선에서 12석 비례의석을 얻은 (조국)혁신당은 수틀리면 야권의 '연합 전선' 구축을 거부할 수도 있다. 야권의 '연합 전선' 구축를 위한 선제조건이 교섭단제 구성 요건 완화라고 내걸고 있기 때문이다. 교섭단체 요건이 완화되지 않으면, 야권 연합 전선 구축에 참여하지 않을 수도 있고, 나아가 윤석열 정권 심판의 야권 연합 전선 구축에 참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적 발언을 개진할 창구를 갖지 못한 시민 민중은 그런 조건을 내걸 계제가 못 된다. ‘입틀막’ 당한 채 그냥 애태우고 속만 상할 뿐이다. 민주당대표 선출에 즈음하여 전 당대표 이재명이 헌법 제1조를 거론하며, 한국이 “국민이 주인인 나라”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런데 어떻게 주인이 될 수 있나? 구체적으로 방법이 묘연하다. 그래서 이런 말은 빛 좋은 개살구가 된다. 지금 국민은 결정의 권한 없이 여론조사의 대상이 될 뿐이고, 그 여론조사라는 것은 필요에 따라 조작되기도 한다.
시민단체 혹은 시민의회라는 것이 회자되곤 하는데, 이것도 반드시 시민 민초의 뜻을 그대로 드러내는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다수 왜곡하고 위정자의 필요에 따라 원하는 결론을 얻어내는 도구로 이용되기 십상이다. 일부 소수 시민단체의 뜻이 마치 다수 민의를 대변하는 것처럼 침소봉대 되는 것이다.
변치 않고 의원내각제를 주창한 전 국회의장 김진표가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위한 개헌 운운하면서 시민(단체) 대표가 함께 국회에 모여 논의하자고 한 적이 있다. 이때 시민단체는 여야 그 어느 편을 막론하여 권력의 하수인, 실제로 다수 민초의 뜻을 배반, 왜곡하는 거간꾼이 된다. 그런 점에서 시민단체, 혹은 시민의회는 또 하나의 위정자 국회의 아류이다.
시민의회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라기보다, 그것이 갖는 한계가 있고, 또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가 있다. 한계란 모든 사안을 시민의회를 거쳐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누가 봐도 명확한 것은 모여서 의논할 필요 없이 각자 시행하면 된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것은 의회에서 결정한 사안이 아니라는 점이 그러하다. 민주의 핵심은 시민 ‘의회’가 아니라, 대표에 의해 걸러지지 않은 전체, 혹은 개인으로서의 민중의 뜻이다. 또 시민의회가 권력의 들러리, 혹은 관료적 기구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곳곳에 다수의 시민의회가 분권적으로 존재할 필요가 있겠다.
시민 민중의 뜻은 시민단체나 시민의회 등이 아니라, 국민투표를 통해 바로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이때 토론은 할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 사람은 이미 터득한 자기 신념, 사고방식을 잘 안 바꾼다.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굳어져 있기 때문이다. 옳든 그르든 그러하다. 모아놓고 토론하고자 하는 것은 의견을 수렴하기보다 흔히 목적성을 가지고 설득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 그 설득은 전을 벌이는 일방이 원하는 결론을 얻기 위해 투표하는 사람을 종용하는 과정으로 이용되기 십상이다.
때로는 주최측이 이른바 시민을 대표하는 이들을 매수하기도 한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한국전력이 동해안 송전선로 사업을 진행하면서 이장 등 특정 주민과 단체에 억대 금품을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한다. 주민 대표가 입지선정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돈을 받거나 지원 사업에 연루된 반면, 다른 주민들은 관련 정보에서 아예 소외되었다는 것.(경향신문, 2024.6.16.)
위정자가 국민의 뜻을 들러리로 이용하기도 한다. 국회의장 우원식이 18일 방송3법을 본회의에 상정하지 않았다. 다수 야당 단독으로 의결했으므로 협치를 해야 한다고 하고, 법안 원점 재검토,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소추 논의 중단, 두 달 간의 범국민협의체를 통해 방송법 개정을 여야간 합의로 내놓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두 달이 지날 즈음이면, MBC 등이, 기왕의 KBS처럼 이미 현정부가 원하는 대로 이사 교체하고 그 손아귀에 넘어갈 것이 확실할 것으로 전망되는 시점이다.
이때 우원식이 말하는 ‘협치’가 다수 민중의 뜻인지는 불확실하다. 우원식은 범국민협의체를 통해 여야 간 합의를 도모하자고 한다. 이때 범국민협의체란 다수 국민의 뜻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원하는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들러리로 세우는 ‘시민의 대표’를 말하는 것이겠다.
윤석열과 김건희도 국민 민초를 개코같이 여기는 데서 예외가 아니다. 윤석열은 대놓고, 한 사람이 지지해도 자기 뜻대로 한다고 하질 않았나. 윤석열의 처 김건희도 예외가 아니다. 김건희가 명품백을 어디서 받았는데, 회자하는 바로 크게 두 가지가 문제가 된다.
한편으로, 미리 사과하려고 했고 또 여러 주변인에게 의견을 구했으나, 만류하는 이도 있고 보낸 류내폰 문자를 ‘읽씹(읽고는 무시)’한 이도 있어서 사과의 기회를 놓쳤다는 것, 다른 한편으로는, 처음에는 명품백을 국고로 귀속시켰다고 했다가, 이제 와서는 돌려주라고 지시를 했는데, 아래 사람이 깜박하고 아직 돌려주지 못한 것이라고 한 것이다. 그래서 혼선이 생겼다. 국고에 귀속시킨 재물을 개인이 마음대로 돌려주면, 그 자체가 횡령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가 하기 때문이다.
수수한 명품백을 둘러싸고 김건희가 전개하는 이 같은 각본은 좀 우스꽝스러운 데가 없지 않다. 첫째, 명품백 수수와 사과의 행위가 어떤 관련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재물을 받은 것이 위법과 처벌의 대상이 되는지를 먼저 가려야 하는 것이다. 사과는 부차적인 것이고, 하거나 말거나 본인이 원하는 대로 하면 된다. 그런데 위법과 처벌의 담론이 아예 실종되고, 사과 여부가 온통 전면에 등장했다. 이것은 사과하는 것으로 위법과 처벌의 문제를 피해가겠다는 전략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건희만 나무랄 것이 못 된다. 그녀가 이렇듯 본말을 전도하고, 앞뒤가 맞지 않은 변명을 늘어놓는 것은 그렇게 해도 딱히 처벌받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숙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어떤 비리 의혹에도 검찰이 김건희를 소환조사 한 번 하지 않은 것이 그 증거이다. 야당은 그런 사실을 떠들지만, 구체적으로 대책이 없다. 그냥 소리 높여 짓는 개같이 떠들 뿐이다. 남을 매도함으로써, 자기 측에 유리한 정치적 입지를 구축하고, 그것이 득표를 연결될 수는 있겠으나, 사실 자체에 대한 보정, 처단은 지금으로서 요원해 보인다.
셋째, 조국이 법과 정치의 영역을 혼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법학 교수 출신인 조국이 정치판에 들어와서도 그 사고가 여전히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로 이보다 더 확실한 것이 없을 것 같다.
조국은, 지금으로서는 윤석열을 탄핵하기 어렵다고 하고, 탄핵하려면, 더 확실한 위법한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여기에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 있다. 총선 전 조국이 “3년은 너무 길다”라고 한 구호는, 윤석열이 저지른 위법 사항을 기준으로 한 것도 아니고, 앞으로 위법이 더 쌓여야 한다는 개념과도 무관하다. 그 구호는 지금까지 윤석열이 한 행위를 두고 한 것이었[다. 또 위법을 밝히고 벌하는 검사나 재판관으로서 한 말이 아니고, 일반 시민 민중의 눈으로 보는 정치적 영역의 평가였다. 그리고 그 구호가 민심에 반향을 일으켜, 조국은 12석 비례의원을 끌어갔다.
“3년은 너무 길다”라는 조국의 구호는 위법과 무관할 수도 있는 정치의 영역이다. 정치는 위법 여부로 따질 수 없는 실책, 무능 등의 결격사유가 있다. 총선 전에 조국이, “3년은 너무 길다”는 말이 기실 탄핵을 뜻하는 것은 아니고, “윤석열을 탄핵하려면, 위법행위가 조금 더 쌓여야 한다”고 밝혔더라면, 많은 사람들이 절대 ‘비조(비례는 조국혁신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검사장 민선제가 자취를 감추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슬그머니 수사심의위원회로 탈바꿈해버린 다음에도, 조국은 한마디 변명 혹은 해명조차 하지 않았다. 민초가 원래 정치적 발언권이 없는 ‘입틀막’의 대상이기 때문에 상대할 가치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또 그가 정치의 영역을 법의 영역으로 수렴시키려 하는 것은 권력의 원천인 국민 민초를 법관 사법권력 아래 종속시키려는 편협한 사고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민중 주권의 민주는 법치의 영역을 초월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조국은 숙지하지 못한 것이다.
이렇듯, 위정자들은 국민 민초 앞에 무책임하다. 그런데 조국, 우원식, 김건희를 손가락질하고 나무라기만 하는 것은 도움이 안 된다. 국민 민초에 대한 약속을 초개같이 저버리고, 또 그 민초의 뜻을 법의 이름으로 짓밟고 왜곡하려는 조국, 또 전 국회의장 김진표와 똑같은 전철을 밟으며, 방송3법 국회 본회의 상정을 방해하고 감히 여야 ‘협치’를 종용하면서, 이것을 ‘국민’의 이름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들러리 같은 ‘범국민협의체’를 구성하겠다고 하는 우원식이라도.
이들이 이런 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은 그런 행위를 해도 되는 권력구조에 그 원인이 있다. 개인을 탓하고 그 선의를 바라는 것은 제도가 아니다. 민주는 개인의 선의 여부를 불문하고 각기 권리를 찾는 제도적 방식에 방점이 있다. 조국, 우원식을 탓하기 전에, 그들이 그런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또 그런 이가 나타나면 즉각 축출할 수 있는 제도를 갖출 일이다. 못난이같이 앉아서 너는 그래서 안 된다고 징징 짜고 있을 일이 아니다.
윤석열, 김건희의 경우도 그와 같다. 그들을 비난하는 것이 최종 목표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을 반면교사로 하여, 이런 경우 즉각 대처, 처벌, 축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어떻게 마련되어야 할 것인지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이겠다. 그렇지 않고, 윤석열, 김건희를 목놓아 비난하는 데 그치는 것은, 그들이 갖고 있는 권력을 탐하는 이들의 소치라 보아야 한다. 그래서 도긴개긴, 오십보백보에 불과한 것이 된다.
플라톤이 “정치를 외면한 대가는 저열한 인간들에게 지배를 당하는 것이다”라고 했다는 말이 회자한다. 그런데, 지금은 민초가 “정치를 외면”한 것이 아니라, 거꾸로 정치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정치하고 싶어도 제도적으로 뜻을 개진할 출구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도, 저열한 인간들의 지배를 받지 않을 수가 없다. 강요된 지배, 이것은 민주가 아니고, 헌법 제1조에서 말하는 주권자 국민도 아니다.
정치적 발언을 개진할 공식적 출구를 갖지 못한 민초는 속절없이 촛불만 들고 있어야 한다. 박근혜 때도, 지금도 그러하다. 그러나 촛불은 제도가 아니다. 위정자들은 국민 민초가 당연히 촛불을 들고 있어야만 되는 줄로 안다. 이 같은 지경에서도 민주당 전 대표 이재명은 참으로 무모하게도, 헌법 제1조를 들먹이고, 국민이 주권자라고 소리 높여 외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국민은 국회의 들러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김진표와 우원식 등 국회의장이 여야 협치 해야 한다고 하면, 다수 국민의 뜻은 거기에 종속되고 묻혀 가려져 버린다. 그런 국민은 주권자가 아니라, 들러리, 허수아비이다.
위정자보다 더 암담한 상황은 바로 스스로 주권자라는 사실을 깡그리 망각한 민초 자신에게 있다. 누가 대신해주어야 마음이 놓이고, 그럴 듯해 보이고, 자신이 하는 것이 뭔가 어쭙잖아 보여 용기 없어지고, 자신을 너무 겸양하고 비하하는 민초. 오늘 이 나라의 질곡은 윤석열, 김건희, 이재명, 조국, 우원식 등이 아니라, 바로 비겁하고 소심한 민초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것이다.